이해찬 대표의 마지막 임무

 

나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한명숙 전 총리를 존경한다.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들이 아닌가. 그분들 및 일각의 시민정치 운동 요청으로 잠시 정당 노선 정립에 관여한 적이 있다. 내가 당시 제안했던 ‘시민 네트워크 정당’ 이론은 오늘날 민주당의 노선에 약간은 스며들어 있다. 그 덕분에 강준만 교수님으로부터 나의 이론이 한국 실정에는 맞지 않는다고 격렬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요즘 들어 자꾸만 그가 옳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회한이 든다. 굳이 변명하자면 지금 민주당의 현주소는 아직은 내가 제안했던 정치 모델로부터 거리가 있다. 이해찬 당 대표의 마지막 임무는 일단 ‘시민 네트워크 정당’이라고 하는 민주당 원래의 화두를 다시 논의 테이블에 올려놓는 것이다. 이어 8월 선출될 다음 당 대표는 그 토대 위에서 ‘K방역’처럼 세계가 부러워하는 자유주의 미래 정당의 모델을 실험했으면 한다. 열린우리당 시절 혼란의 시대로 퇴행하지 않으면서도 다원성과 절차적 정당성(due process), 공적 책임성이 살아있는 정당 말이다. 지금 민주당은 다음의 4가지 질문을 던지며 미래 가치와 정당 노선 논쟁을 펼칠 때이다.



지금 이해찬의 민주당은 당의 단일한 정체성과 기율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진성정당 노선을 추구하는 건가?


내 기억에 민주당 노선은 의원들의 다원성이 존중되는 원내 정당이다. 원내 정당과 강제적 당론은 물과 기름이다. 아니 지금 민주당이 제일 강조하는 상시국회가 작동하려면 개별 의원들이 때로는 강력한 목소리도 내고 교차 투표도 해야 한다. 나는 미국 민주당 내 도전자이자 미래 가치인 코르테스 하원의원을 리더이자 현재 가치인 펠로시 원내 대표가 징계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많은 이들이 당론이 되기에 위험천만하다고 했던, 그러나 결과적으로 옳았던 IMF 재협상론은 김대중이란 도전자의 작품이다. 기존 진보의 관념으로 수용하기 어려웠던, 그러나 국제정치의 고뇌가 들어있던 이라크 파병론은 노무현이란 도전자의 작품이다. 물론 열린민주당 트라우마는 이해한다. 나 또한 그 당시 분열적인 태도를 강력히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경선과 본선에서의 유권자의 최종 판단이 아니라 징계에 의한 해결방식은 원내 정당 모델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겐 십년 앞을 내다보는 김대중과 노무현 의원이 아직 없다. 정당 내 다원적 스펙트럼은 오늘날 정당 생명의 백신이다. 이해찬 대표는 원내 정당 모델을 다시 분명히 하고 다음 당 대표는 이를 발전시켜야 한다.

지금 이해찬의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포용 민주주의론’(Inclusive Democracy) 가치를 기억하는가?


대통령이 이를 천명한 배경은 오늘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 담론의 추세에 부응하기 위해서이다. K방역과 포용국가론은 한국의 훌륭한 소프트웨어로 발전시킬 만한 잠재력이 있다. 집권당은 당내의 다양한 견해를 포용하고 당 외부로는 그간 배제된 투명인간과 소수자들을 주체로 포괄하기 위한 가치논쟁을 해야 하지 않는가?



지금 이해찬의 민주당은 외부의 무책임하고 품위 없는 정치평론가들과 단호히 거리를 두며 무게 중심을 잡고 있는가?


시민 네트워크 정당으로의 확대가 곧 품위 없는 자들과의 거리 줄이기는 아니다. 물론 박근혜 정부 시절 그들이 전투적 투쟁을 통해 긍정적 역할을 수행했던 걸 나는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공적 책임 정당과 사적 평론가들 사이에는 분명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미국 시민정치운동의 상징인 무브온이 잘못된 길을 갈 때 오바마는 단호히 비판했다. 엘리자베스 워런이라는 걸출한 대선후보에게 막말하는 전투적 진영론자들에게 샌더스 후보는 그들은 나의 지지자가 아니라고 일갈했다. 현재 당의 리더십이 이런 태도로 전환될 때 이후 당 대표는 당 문화와 제도에서 더 발전적 관계정립으로 도약이 가능하다.



지금 이해찬의 민주당은 청년의 문턱을 대담하게 높이고 있는가?


나는 과거 시민정치 노선 제안 시 청년비례 제도를 밀어붙였다. 오늘날 민주당의 스타인 박용진 의원, 김해영 전 의원 같은 이들 20명만 나와도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 그리고 그다음의 미래는 밝다. 지금 이해찬 대표 체제는 청년과 초선 의원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고 다음 당 대표는 제도적으로 더 대담한 실험을 관철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비록 아쉬움도 많지만 이번 코로나19 정국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럼 다음 과제는 서구 정당보다 더 자유주의적이고 더 미래지향적인 정당의 세계적 모델이다. 민주화 운동의 걸출한 선배이신 이해찬 대표의 마지막 임무는 바로 그 넥스트 어젠다의 정지작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원문 | 경향신문 [정동칼럼] 2020년 6월 8일
이미지 | 김현의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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