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반쪽을 계승한 이재명
노무현의 뜨거운 가슴을 계승하고 차가운 머리를 버리는 이재명. 나는 지금부터 2022년 대선까지 펼쳐질 한국 사회의 미래를 이렇게 요약한다. 즉 실용적 포퓰리즘을 계승하고 도덕적 자유주의를 버린다. 전자는 기득권과의 영리한 투쟁이고 후자는 도덕과 적법한 절차(Due Process)의 이성적 존중이다.
사람들마다 각자 좋아하는 노무현이 다 다르다. 어떤 이들에게 노무현은 가슴을 뛰게 하는 포퓰리스트이다. 여기서 포퓰리즘이란 보수언론의 저주와 달리 학문적으로는 기득권과 싸우는 서민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정치 담론을 말한다. 지역 차별 구조에 대한 노무현의 평생에 걸친 담대한 도전이 그런 예이다. 단 여기에 실용적이란 형용사가 붙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미국의 버니 샌더스가 보다 이념적인 좌파 포퓰리스트라면 노무현은 현실적 문제해결을 중시한 실용주의 포퓰리스트이다. 노무현이 지역에 강박적으로 집착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이 고리를 통해 공정, 혁신, 성장, 삶의 질 등이 한꺼번에 풀리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도덕적 자유주의자라서 좋아하는 이도 있다. 자유주의자(리버럴)란 다수의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들의 동등한 법적 보호, 견제와 균형, 합리적 과정과 절차를 중시하는 자를 가리킨다. 내로남불의 대한민국에서 바보같이 이성적 담론과 과정의 정치를 꿈꾸었던 노무현은 시대를 앞서간 리버럴이다. 예를 들어 노무현이 애착을 가졌던 이지원이란 국정운영 플랫폼은 계급장 떼고 활발한 토론과 합리적 의사결정 절차를 시스템으로 구현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 리버럴한 정신만이라도 잘 유지한다면 지금보다 더 다원적이고 더 예측 가능한 국정운영이 가능하다. 여기에 도덕적이란 말이 붙는 이유는 노무현은 정치 과정에서 실천적 도덕과 윤리적 엄밀성(Integrity)의 화두를 끝까지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노무현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열정적 포퓰리즘과 신중한 자유주의를 때론 배합에 실패하면서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언론들의 오해와 달리 서구 정치학의 거장들은 정치는 포퓰리즘과 자유주의 두 날개로 날 수밖에 없다고 오래전부터 지적해왔다.
이재명은 놀랍게도 수년 동안 정치 영역에서 식어버린 노무현(더 거슬러 올라가면 김대중!)의 뜨거우면서 실용적 심장의 부활이다. 그간 역동적인 국내외 현장에서 근육을 단련하지 못한 실내 헬스클럽형 엘리트들은 기득권과의 치열하면서도 지혜로운 전투에 혼이 부족하거나 속근육이 영 부실할 수밖에 없다. 이제 와서 균형발전? 만시지탄이다. 하지만 참 빨리도 진리를 터득했네. 지금 시대정신은 벌써 ‘촛불’에서 ‘내로남불’과 ‘영끌’로 이동했다. 세상에, 진보 정부의 시대에 이런 키워드라니. 이재명은 <스킨 인 더 게임>의 저자인 나심 탈레브의 표현을 응용하자면 ‘가짜 질서’의 허상을 잘 파악한다. 지금은 흔들리는 질서를 안타까워할 때가 아니라 무질서 속에서 새로운 질서의 발명을 환영해야 할 대전환기이다. 기존의 자연착취형 성장론, 사적재산권과 상속 개념, 균형재정론, 노동가치론, 완전고용론, 수도권 메가시티론, 학교 서열제, 북방경제론, 자유주의 국제질서 등이 다 녹아내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도덕적 리버럴리스트 노무현도 계승하는가? 관심이 별로 없어 보인다. 성남은 한국의 시카고이다. 이재명의 성남시장 시절과 현 경기도지사로서의 행정을 보면 마치 시카고의 거친 정치판에서 성장한 람 이매뉴얼 시장(전 오바마 행정부 비서실장)을 보는 느낌이다. 사실 이재명만이 아니라 지금 진보 진영은 대부분 실천적 도덕의 리버럴 노무현을 계승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자유주의가 민주화 시대 다음의 가치로서 얼마나 소중한지, 이를 어떻게 진화, 전환시켜야 하는지의 시야도 잃어버렸다. 오직 단일한 진영으로 전선을 돌파하려는 전투적 대결주의만이 존재한다.
만약 이재명 모델이 성공한다면 겉으로 안정되어 보이는 가짜 질서는 마구 뒤흔들릴 예정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금 본격 성숙하기도 전에 동시에 훼손되는 도덕과 자유주의 원리들도 동요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한국 사회는 최소한 2032년 전까지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희망이 시기상조일지도 모르겠다. 이재명과 경쟁하는 민주당과 정의당의 걸출한 대선 후보들은 과연 이 두 가지 과제의 균형 있는 추진으로 궤도를 선회시킬 수 있을까? 실용적 포퓰리즘은 이재명에 비해 부족하더라도 도덕적 자유주의는 더 성숙한 새 배합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을까? 글쎄, 이 어려운 선택에서 과연 대한민국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잃을 것인가?
경향신문 [정동칼럼] 2020년 8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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