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과 윤석열에게
기존 노선의 계승·관리형인가? 아니면 해체·재구성의 유형인가? 지금 출마를 생각하는 대선 후보들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왜냐하면 지금 시대정신과 자신의 DNA가 일치하지 않으면 괜히 가족들만 고생시키기 때문이다. 두 유형 중 우열은 없다. 다만 지금 시대의 물결은 후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재차 확인되었지만 다수 시민들은 기득권을 견제하고 공정한 문제해결을 통한 재구성을 원한다.
경선이라는 험난한 벽을 넘어야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만 보면 이재명과 윤석열이 이 시대정신 퍼즐의 일부 조각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재명은 김대중 정부의 레임덕 시기에 전환적 리더십으로 재구성된 질서를 탄생시킨 노무현 시즌 II가 될 수 있을까? 이재명은 기득권 부수기와 문제해결 능력이란 점에서 문재인 행정부보다 낫다. 하지만 그는 그간 당 내부와 본선 민심 간 큰 격차의 곤혹스러운 구조 때문에 기득권 타파의 브랜드가 훼손 중이다. 그럼 윤석열은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기대처럼 혜성처럼 무대를 평정한 한국의 에마뉘엘 마크롱이 될 수 있을까? 물론 그는 인생의 쓴맛을 겪었기에 풍선처럼 부푼 과잉 자아가 없다는 점에서 기존 제3의 후보들과 다르다. 하지만 경제사기범 수사의 귀재라는 것과 교착된 경제구조의 대안을 만들어가는 건 다른 차원의 업이다.
만약 그들이 천신만고 끝에 최종 레이스에 도달한다면 누가 더 기득권에 맞서 공정과 문제해결자의 상징인지를 놓고 흥미로운 진검 승부를 벌일 것이다. 다만 기존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 패러다임으로 이해하기 힘든 3가지 축의 미래형 이슈에서 그들에게 문제해결력이 있을지 난 아직은 잘 모르겠다. 기후위기, 양극화, 미·중 신냉전 말이다. 대한민국의 향후 30년 운명은 이 3가지에서 주로 결정된다.
기후위기. 아직은 두 인물과 어울리지 않는 느낌의 단어다. 과연 앞으로 이재명은 안타깝게도 기후위기에 전혀 관심이 없는 채 출발했던 문재인 행정부와 얼마나 다를까? 몇 년 남지 않은 2030년까지 현재의 기후악당 국가에서 기후선도국가로의 고통스러운 전환 로드맵을 가지고 있을까? 윤석열은 한국 대기업들이 뒤늦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소동으로 난리가 난 신기후 체제에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 과거 미국 프랭클린(진보)과 시어도어(보수) 루스벨트 대통령의 선구적인 환경 보호 노력처럼 이재명과 윤석열의 기후위기와 생명위기 극복 경쟁을 볼 수는 없을까?
양극화. 이 화두에서는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대출이라는 브랜드로 이재명이 저 멀리 앞서가고 있다. 하지만 ‘기승전 기본’의 프레임은 근사한 슬로건이지만 종합적 경제 재구성의 일부 조각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는 이미 익숙한 문제해결형 사법 패러다임보다는 강압수사에 더 유능한 윤석열과 양극화란 단어의 조합은 매우 어색하다. 단지 기본 시리즈 대 시장주의의 이분법 경쟁 대신 양극화, 기후위기, 국제질서 격변이 상호 얽힌 고차방정식 해법 경쟁을 볼 수는 없을까?
미·중 신냉전은 인류가 처음 겪는 뉴노멀이다. 이재명은 이 새로운 도전 과제 앞에서 문재인 행정부의 기존 전략적 모호성과 한·일관계 해법의 갈팡질팡에서 얼마나 진화한 노선을 가지고 있는가? 윤석열은 미국이 요구하는 건 그냥 수용하는 기존 보수 노선과 얼마나 다를 수 있나? 최근 그의 절친한 친구가 윤석열의 브랜드로 제안한 ‘애국적 국제주의’ 노선은 어떤 실질적 내용을 가지는가? 윤석열과 이재명은 이 애국적 국제주의 대 다원주의적 국제주의(자유주의 민주주의에 근거한 다문명의 공존 질서)의 제3의 길 논쟁을 본격 전개하면 어떨까?
물론 여야에는 지금 앞서가는 두 인물 말고도 시대정신에 부합하려고 노력하는 걸출한 인물들이 많다. 이들은 기후, 양극화, 미·중 신냉전 이슈에서 이재명과 윤석열을 넘어서는 비전과 실행력으로 경쟁해야 한다. 누가 나오든지 지금은 이들 모든 후보들에게 회초리를 들어야 할 때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이들을 견제하고 진화시키지 않으면 내년 청와대 입성 후에는 더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 행정부가 최대한 ‘교만과 어설픔’(망치부인의 성찰적 진단)의 한국정치 고질병의 수렁으로 또다시 빠져들지 않으려면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모든 걸 중앙 권력 게임으로 빨아들이는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특성상 시간이 별로 없다. 지금부터 슬기로운 1년 생활에 한국사회의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한다.
경향신문 [ 정동칼럼 ]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