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음모와 ‘재난 뉴딜’ 정치연합

 

다들 저마다 과거로의 퇴행을 막기 위해 선거 전망과 다양한 비례위성정당 제안을 내놓았다. 난 이 곤혹스러운 고민이 가지는 절실함과 진정성을 믿는다. 다만 그중 일부 논객들은 과거 조국, 지소미아, 코로나19 사태에서 일관되게 일주일 앞도 못 내다본 걸 기억한다. 이분들이 스스로 가장 자랑하는 게 정치 윤리가 아니라 정치 현실주의라는 게 나에겐 기이한 퍼즐이다. 왜냐하면 자주 현실 예측에 실패하는 현실주의는 금시초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떡하든 정치연합을 확대하려 하기보다는 비생산적으로 감정을 건드리고 진보정당의 핵심 지역구 기반을 위협하는 등 정치연합을 축소하는 데 매진하는 건 현실주의가 아니다. 이번엔 이들의 수학적 시뮬레이션 능력이 맞을 것이라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의 균열이 선거 이후 복합위기의 비상조치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확장된 연합의 걸림돌이 될까 난 두렵기만 하다. 어느덧 현실지형이 되어버린 비례위성정당 추가 논쟁은 비생산적이다. 어떤 선거 참여 형태이든 이제는 시민들의 판단에 과감히 맡기자. 오히려 남은 기간 및 선거 이후엔 다음 공동 행동에 힘을 모으면 어떨까 제안한다.

첫째, 균형예산론 거부 선언과 재난 뉴딜 정치연합을 결성하자.

오늘날 균형예산은 무책임하고 보수의 철 지난 패러다임이다. 이번 행정부가 보수 정부는 아니지 않은가? 지금 ‘재난 자본주의’ 단계는 팽창이 아니라 수축 국면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확장적 재정 정책을 넘어 심지어 ‘현대화폐이론’의 완전 일자리 보장을 위한 국가 책임론까지 논쟁이 되는 세상이다. 이 이론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만큼 현 단계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 국면은 새로운 상상력을 요구한다. 청와대는 그저 전례 없는 대책을 주문하는 곳이 아니라 전례 없는 대책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당장 추가 추경의 폭에 대한 기술적 논쟁을 넘어 균형예산론자들 및 이와 다른 관점의 진보 경제학자들의 근본적 패러다임 토론부터 벌여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 당장의 한시적인 재난 안정소득에서부터 총선 직후 기본소득과 청년 사회상속제에 이르기까지 ‘뉴노멀과 (그린) 뉴딜 정치연합’을 성사시켰으면 한다. 그린 뉴딜? 그렇다. 앞으로 더욱 악화될 감염병 시대는 자연 생태계 파괴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린 뉴딜에 모른 척하는 건 곧 코로나 사태를 악화시키는 행동에 다름 아닌 반(反)생명 행위이다

둘째, 코로나19 사태 직후 다가올 복합위기 예방 TF를 초당적으로 구성하자.

정부가 해외 체류 시민 한명 한명의 생명까지 철저하게 신경을 쓰는 미국을 보며 부러웠던 시절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하나도 부럽지 않다. 질병관리본부 전문가 및 의료진들의 세계적 수준과 민주 정부의 투명성, 지자체의 창의성을 가진 대한민국에 사는 게 얼마나 축복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21세기 정치는 위기를 뒤쫓아 관리하는 곳이 아니라 미리 예방적 개입을 하는 소명을 가진다. 지금 청와대와 정치권이 할 일 중 하나는 감염병, 기후파국, 식량 위기, 경제 대위기 등에 대한 전문가 TF를 통해 코로나19 사태 종료 직후부터 닥쳐올 새롭고 더 비극적인 복합위기 개입 패러다임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상조치가 일상인 시대에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사회적 거리 ‘줄이기’(특히 장애인, 노인, 외국인 노동자 및 취약 직종 노동자 등과의 강한 연결 확대) 사이에 새로운 균형을 발명해야 한다. 때로는 거리두기가 이들의 각자도생과 안전한 공동체에서의 추방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및 정치권이 이 거리두기와 거리 줄이기의 동시병행 담론을 주도해야 한다. 그리고 코로나19 이후 전혀 차원이 달라진 국제 정치경제 맥락에 대한 적응과 새 패러다임을 준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김석현 인텔리전스코 파트너가 지적하듯이 기존 경제 가치사슬 파괴와 새로운 재난 보호주의를 극복할 비전과 리더십 말이다. 과거 메르스 직후 백서의 가장 핵심을 휴지 조각으로 만든 정치권과 달리 이번에는 청와대와 뉴노멀 정치연합이 끈질기게 대비책을 만들고 실행을 조기 완료하길 절실히 호소한다.

시간이 없다. 코로나19 사태는 다가올 거대한 복합위기와 파국의 전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제발 이제 남은 에너지는 현재 긴급 과제와 파국적 미래 예방을 위한 넓고 단단하고 안전한 연결망을 만드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으면 한다. 이 과정을 잘 관리하면 음험한 탄핵 음모는 감히 발붙일 틈이 없을 것이다. 영화 <활>의 유명한 대사가 있지 않은가?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는.

경향신문 [정동칼럼] 2020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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