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제국 시대의 한반도

미국 일각의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은 설령 바이든이 당선되더라도 미·중 간 신냉전은 불가피하다고 전망한다. 다른 가능성은 전혀 없을까? 나는 과거 닉슨과 덩샤오핑의 놀라운 미·중 협력처럼 ‘지구적 기후 제국’들의 ‘갈등 속 협력’도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지난 22일 시진핑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놀랍게도 2060년까지 탄소중립화를 선언했다. 여전히 화석연료 산업이 60% 이상 비중인 중국이? 연설 동기에 대한 중국 전문가들의 회의적인 목소리가 들린다. 내년에 시작될 새 5개년 경제계획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라는 패권국가들은 나름대로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시급한 전환의 필요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제러미 리프킨은 2028년 화석연료 산업이 붕괴하고 부채로 전락하는 좌초자산 가능성을 예고한 바 있다. 리프킨을 그저 낭만적 미래학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냉혹한 현실주의자인 미국 국방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이미 군통수권자인 트럼프에 반역까지 하면서 탈탄소 기반 군 시설과 전쟁 전략 수정을 착수해왔다. 미국이 이념전에서 승리한 냉전과 달리 트럼프 스타일의 복고주의 대 시진핑의 미래주의, 누가 이기겠는가? 내가 만약 시진핑의 책사라면 생태 마르크스주의, 생태 유교, 그리고 디지털 독재론을 정교하게 결합한 ‘생태 마오주의’를 더 심화시키겠다. 사실 시진핑의 의지나 허세와 무관하게 코로나19마저 사소해질 복합재난들이 일상화하면 이러한 시나리오도 생각보다 빠를 가능성이 있다.

나만의 공상일까? 이미 오레스케스 하버드대 교수는 기후파국 등 대붕괴 이후 중국식 권위주의 모델이 서구식 자유주의 민주주의를 이길 것이라 예상한 바 있다. 웨인라이트 오하이오 주립대 교수는 2년 전 이 모델을 ‘기후 마오’ 체제라 불렀다. 이 경로는 자본주의의 지구적 기후 제국(바이든이 혹시 당선된다면 기업국가 주도의 그린 뉴딜) 및 트럼프 스타일의 복고적 체제, 혹은 아예 미·중 모델을 넘어선 탈자본주의 생태 체제와 경쟁하는 가능성 중 하나이다. 나는 여기에 미·중 기후 제국 동맹이 맺어지는 시나리오도 첨가하고 싶다.

이 다양한 가능성 앞에서 곤혹스러운 질문들이 떠오른다. 만약 신냉전이 아니라 기후 제국의 질서를 놓고 미·중이 다투거나 혹은 협력한다면 한국은 어떤 대전략이 필요한가? 현재 기후악당 국가이자 향후 좌초자산으로 가장 손해 볼 가능성이 큰 국가인 한국은 과연 이 기후 제국 질서에 뒤늦게 적응할 수 있을까? 천우신조로 ‘미·중 동맹’이 2030년까지 기후위기를 낭떠러지 직전에 봉합한다면 그 후 20년간 아시아와 한국의 운명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질까? 20세기형 위기관리도 못해 바다에서 허둥지둥 헤맨 한국의 국방부는 기후 제국 질서 대비 안보 전략은 준비하고 있을까? 몇 년 전부터 이미 서구 일각에서 경고된 팬데믹조차 예측 못한 것으로 보이는 한국 정보기관들은 지금은 나아졌을까? 만에 하나 이 기후 제국 질서가 본격화되면 남북 평화공존이나 통일을 더 앞당길까 그 반대일까? 문재인 정부 초기의 낡은 미래 전망과 전략은 지금쯤 크게 수정되어 있을까? 계몽군주라는 과분한 칭송까지 받는 김정은은 자신의 아버지와 달리 새로운 지각변동 속에서 생태 전체주의인 ‘기후 김정은 체제’로 전환할까?

지금 문재인 행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일각에서 비판하듯이 운동적 민주주의, 심지어 전체주의 경향을 띠는 정부여서가 아니다. 다만 그들은 그저 과거 민주화운동 시대의 한계 속에서 자유주의에 대한 감수성과 국정 운영 능력이 부족할 뿐이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가 만든 트라우마와 권력의지 속에서 갈팡질팡할 뿐이다. 청와대의 진짜 큰 문제는 전환적 가치와 리더십의 운동 대신에 관리형 정부를 내심 바라는 심리이다. 일부 훌륭한 인재들이 청와대와 당에서 고투하지만 문재인 행정부의 핵심들은 그저 과거 인수위 단계에서 설정한 국정비전과 숙제를 관리하기에 정신이 없다.

하지만 이미 세상은 자본주의 재생산 위기, 팬데믹과 기후파국 등이 만들어내는 ‘장기 비상의 시대’(쿤스틀러 작가의 표현)로 완전히 이동했다. 그런데 천연덕스럽게 전시경제를 말하면서 정작 균형재정, 화석연료산업 수출과 부동산의 절충적 관리를 추구한다. 이제 남은 임기 2년, 관리정부 및 사회 각 영역의 관리형 리더들은 후대 역사의 책임을 피할 길이 없다. 아뿔싸, 민주화운동 시절 즐겨 인용하던 ‘역사가 우리를 용서하리라’는 문구가 이제 아픈 비수로 우리에게 돌아올 줄이야. 황혼기에 접어든 ‘우리 모두’는 전환 가치와 리더십을 만들어나가는 일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경향신문 [정동칼럼] 2020년 9월 28일
이미지 | W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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