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문재인의 ‘브로맨스’

세상에, 미국은 향후 최소한 4년간 민주당 대통령 및 2년간 민주당 의회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은 최소한 2년간 민주당 대통령과 의회, 더 나아가 정권 재창출 시 7년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한·미 간에 이런 정도의 환상적 사이클은 없었다. 물론 미국 대선은 향후 10여일에서 몇 달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11월4일은 그간 내가 가졌던 두려움 증세를 스스로 마음껏 조롱하는 시간이길 간절히 고대한다. 

나는 작년부터 바이든 당선 가능성을 이야기해왔다. 그리고 이 시나리오가 ‘중장기적으로는’ 결코 트럼프 재선 시나리오보다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불리하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바이든 당선 시 오바마 시기의 전략적 인내 반복 가능성을 주장해오던 전문가들도 최근 흔들리는 것 같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서의 답변에서 조심스럽게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난 불안하다. 단지 미국과 중국 블록의 신패권 경쟁의 제약 때문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미국과 한국의 공통 가치 기반이 허약하기 때문이다. 

아니, 바이든과 문재인은 둘 다 민주당 정부 아닌가? 물론 그렇다. 그리고 두 대통령은 인격, 민주주의 가치 및 실용주의 DNA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행정부와 문재인 행정부의 차이가 하나 있다. 바로 자유주의에 대한 단단한 기반이 허약해졌다는 사실이다. 즉 과거 미국 민주당 인사들이 초기 오해에도 불구하고 결국 김대중, 노무현을 존경했던 이유는 공정한 규칙의 국제질서, 인간의 존엄, 법적 지배, 견제와 균형, 전체주의에 대한 혐오 등의 공통 가치 기반과 합리적 이성주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 리버럴들 사이에서 과거 김대중, 노무현 시절의 믿음이 약간 흔들리고 있다.  

사람들은 아직도 왜 전혀 상반된 기질을 가진 바이든과 오바마의 브로맨스가 그토록 강했는지를 잘 모른다. 바이든은 나이 든 사람답지 않게 격정적이고 즉흥적이다. 오바마는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답지 않게 냉정하고 이성주의적이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매우 깊은 자유주의적 가치기반 및 진영론을 넘어선 ‘공화국’ 자체에 대한 사랑과 우정을 발견해갔다. 바이든 시대가 혹시 열린다면 그의 내면세계로의 비밀번호는 바로 이것이다.

지금 문재인 행정부와 민주당 인사들은 자신에게 부단히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지금 김대중처럼 미국 리버럴보다 더 깊게 자유주의적 가치를 이해하면서도 이 한계를 넘어서려는 새 노선을 국내외적으로 실천하고 있는가? 제2의 뉴딜이자 마셜 플랜인 지구적 그린뉴딜을 선도할 바이든과 얼마 전 206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시진핑 사이에서 기후악당 국가인 우리를 그들은 어떻게 대우할까? 과거 김정일이 자유주의자 김대중에 대해 가졌던 두려움을 아들 김정은은 지금 어느 정도 가지고 있을까? 지금 대한민국은 미·중 사이에서의 곤혹스러운 줄타기 속에서 ‘거래적 리더십’으로만 각인되고 있는 건 아닌가?

국내에서 가치 및 도덕적 권위가 부여하는 정치자본은 결코 국제관계에서의 정치자본과 별개가 아니다. 개인 존중 메시지 등에서 풍부한 자유주의 기반을 가지면서도 이를 넘어서는 BTS와 영화, 그리고 K방역의 지구적 보편 가치 추구에서 보듯이 지금 중견국가 대한민국은 과거 김대중도 가질 행운이 없었던 성장한 시민사회를 가지고 있다. 이 상승하는 시민사회는 동시에 외교안보 노선의 함의를 가진다. 오늘날 모든 영역에서 리더십은 갈수록 가치의 크기와 깊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남은 임기의 문재인 정부와 서울과 부산 시장 후보, 그리고 다음 대통령 후보들은 국내외적으로 내로남불주의자와 규칙 파괴자들을 단호히 비판하면서 자유주의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나아가 이를 넘어서는 공적 전환(정의로운 국내외 공동체와 공적인 재화에의 동등한 시민 권리), 생태 전환(지구와의 조화와 지구의 권리) 등의 가치 노선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 너무나 덩치가 큰 중국과는 불가피하게 실용적 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고? 그럼 우선 문명의 역사가 깊은 그들도 찬탄할 포용적인(Inclusive) ‘다문명’ 가치 리더십을 전개해야 한다(걸출한 국제정치학자인 피터 카첸스타인 코넬대 교수는 이를 ‘다원적인 지구주의’라 부른다). 미국과 중국 및 그 동맹국들의 편협한 가치와 이익 플랫폼을 지적하고 상호 중첩, 확장하고 촉진하는 가운데 한국의 실용적 이익 공간도 넓어진다. 김대중을 존경했던 바이든이 혹시 당선된다면 문재인 대통령과 깊은 우정과 환대의 정을 나누기를 기원한다.

경향신문 [정동칼럼] 2020년 10월 26일
이미지 |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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