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형, 도대체 바이든이 왜 이래?

바이든은 여성 인권 등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한다. 하지만 ABC 뉴스 앵커의 질문에, 마치 트럼프에 빙의된 사람처럼 미국의 국익을 위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군이 뭐가 문제냐고 싸늘하게 되묻는다. 타인에 대한 공감이 뛰어난 바이든 답지 않게 남겨진 이들에 대해 일말의 미안함도 없다. 그런데 외교안보 전략과 달리 국내 노선으로 눈을 돌리면 바이든은 이제 트럼프가 아니라 정반대인 샌더스에 빙의된다. 중도주의자 바이든이 제출한 3조 5천억 달러(약 4천조 원)의 초대형 예산안은 미국 진보의 상징인 루즈벨트가 살아 돌아와도 감탄할 좌파로의 일보 선회이다. 테스형, 도대체 바이든은 트럼프인가, 샌더스인가?

하지만 바이든의 두 얼굴은 사실은 정확히 하나의 정체성으로 수렴된다. 바로 중국 견제이다. 아프간 철군은 이제 에너지 낭비가 많은 멀티 태스킹을 버리거나 떠넘기고 중국과 운명을 건 진검 승부를 의미한다. 대담한 사회투자국가, 혹은 현대 사회민주주의로의 시도는 더 이상 트럼프에게 백인 노동자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의지이기도 하지만 더 크게는 중국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승부수이다.

지금 백악관을 떠도는 유령은 ‘신냉전’이다. 과거 슐레진저 하버드대 교수 등은 소비에트 전체주의와의 투쟁에서 최후의 보루로서 자유주의를 국내외적으로 단호하고 매력적으로 정립하고자 했다. 우리는 이를 냉전 자유주의라 불렀다. 당시 민권법 통과는 사실은 소비에트와의 이념 경쟁의 일환이었다. 중국 권위주의 진영과의 체제 대결이란 측면에서만 보면 바이든은 신냉전 자유주의자이자 나아가 사회민주주의자이기도 하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소위 전략적 경쟁을 그저 반도체를 둘러싼 경제 패권 전쟁이라고 보는 분들은 백악관의 실존적 위기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바이든의 ‘신냉전 사회민주주의’ 노선은 출발부터 비틀거릴 운명을 가지고 있다. 소비에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적인 중국에 승리하기 위해 바이든은 앞으로도 아프간 철군보다 더한 냉혹한 현실주의 타산을 거듭해야 한다. 심지어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세계 협력 과제마저 신냉전 경쟁의 전략에 종속될 위험성도 존재한다. 당 내에서는 아직도 세상이 바뀐 걸 모르는 소심한 중도주의자들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 트럼프는 하이에나처럼 배회하며 바이든의 급소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위기에 처한 미국의 바이든은 한국의 대선 주자들과 달리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안다. 반면에 한국의 소위 진보와 보수 대선 후보들은 신냉전과 사회민주주의가 어색하게 결합될 정도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의 대통령이 된다는 걸 모른다. 중국은 아직도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잊지 못하는 일부 진보주의자들이 이야기하듯이 서구 제국에 대항하는 방어적인 지역 패권 국가가 더 이상 아니다. 보수 진영에서 단순하게 규정하듯이 공격적인 제국만도 아니다. 중국은 지위 불안과 공격성, 이 두 가지를 다 가진 야누스의 거인이다. 바이든은 진보주의자들이 그저 기대하는 낭만적 협력주의자가 아니다. 기후위기 협력과 경쟁의 양면 체제라는 점에서는 보수주의자들이 생각하는 단순한 냉전 대결과도 사뭇 다르다. 한국의 진보와 보수가 한반도 평화나 대북 압박을 각자 이야기할 때 바이든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머릿속으로는 중국을 생각한다.

얼마 전 평소 부부간 사이좋은 나의 지인은 새벽 3시에 부부싸움을 했다. 백신 예약을 위해 광클하다가 긴장감에서 말이다. 앞으로 대선 이후 우리는 새벽 3시에 단잠을 잘 수 있을까? 새 대통령 대신에 우리의 흰머리가 늘어나는 건 아닐까? 미국은 항상 오판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올바른 결정을 한다고 처칠은 냉소를 내뱉은 적이 있다. 과연 미국을 철석같이 믿고 때로는 더 마초가 되고 싶은 윤석열은 그걸 알고는 있을까? 최재형은 새벽 3시 미국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을 때 옆 참모를 쳐다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이재명과 이낙연은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갈등에 한반도가 시시각각 결박되어 가는 구도에서 과거 진보의 교과서인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새로운 ‘전환시대의 논리’로 재구성해야 된다는 걸 알고 있을까?

우리가 새벽 부부싸움을 하지 않으려면 동상이몽 시즌2 시청이 아니라 대선 후보들에게 물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은 지금 반도체와 기후위기 등 이슈에서 새로운 대결과 협력의 지각판을 만들고 있는데 당신들의 뉴 노멀 시대 신노선은 무엇입니까? 그냥 ‘노멀’ 시대의 포용과 압박 이분법 말고 말입니다. 이번에 행정부의 탄소중립위원회는 아직 탄소중립(넷제로)의 구체적 로드맵이 없다고 용감하게 실토해서 충격을 주었는데 당신들은 혹시 있으신가요? 이럴 때만 정부가 시민과 함께 로드맵을 만들겠다고 하시던데 당신들은 다르신가요? 기후위기와 난민이 곧 안보이자 존엄 이슈인 시대에 국방부 재편과 장기 비상 플랜은 물론 있으시겠지요? 당신들과 우리의 행운을 빕니다.

중앙일보 [ 중앙시평 ] 8.24
이미지출처 |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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