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당 체제 붕괴의 서막이 열리다
이재명 대 윤석열의 양당 소용돌이가 모든 걸 빨아들이는데 붕괴라고? 그렇다. 생각보다 그 발달 추세가 약하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긴 대장동 터널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은 이준석 대표의 제갈량 퍼포먼스(비단 주머니 전달식)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내부 토호 세력을 척결하지 못하고 실패한 촉나라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왜 이들은 사소한 전술 수정을 뛰어 넘는 광폭 행보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상대방의 부패와 무능에 대한 믿음과 환상을 적당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양당을 견제하고자 하는 세력들에게 지혜와 존재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삼국지를 다시 읽거나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기반 애니메이션인 ‘아케인’을 보시기 바란다.
하지만 양당 견제 세력들이 지닌 한계에도 불구하고 미래로의 미세한 틈새가 열리고 있다. 지금 언론들은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질문이 잘못되면 이상한 답이 나온다. 이재명 혹은 윤석열과 제3지대 세력이 단일화를 할까? 이 질문은 틀렸다. 오히려 만약 심상정, 안철수, 김동연이 정당 간 연합정치와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물어야 한다. 지금보다는 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에이, 말도 안돼. 서로 이념이 다른데? 물론이다. 하지만 동시에 세 사람에게는 이 보다 더 중요한 공통 화두와 이해관계가 있다. 즉 이들은 양당이 서로 증오하면서도 상대의 헛발질에 의존해 공생하는 악순환 체제를 무너뜨려야 정작 자신들이 원하는 이념을 조금이나마 실현할 수 있다. 어디 한번 물어보자. 심상정이 긴급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제안한 기후정의와 일자리 보장제가 현재 정의당 수준의 영향력을 가지고 차기 정부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있겠는가? 제로. 안철수가 잘 할 수 있는 과학기술중심국가론은 어떤가? 제로. 김동연이 훌륭하게 제안한 초당적 공약위원회가 정치양극화 현실에서 실제로 성과를 낼 가능성은? 마이너스.
에이, 하지만 소위 엘리트들 속성을 당신은 너무 모르는데? 물론 그간 중도 후보의 역사를 떠올린다면 앞으로의 결과는 뻔해 보인다. 나는 한국 (특히 50대 이상 남성) 엘리트들 특유의 왕자병이 지긋지긋하다. 이들은 김대중, 노무현이 왜 자신의 모든 걸 걸고 가치가 다른 세력들과의 연합이나 단일화를 만들어 냈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들은 더 뛰어나서 김대중과 노무현과 달리 홀로 선 마크롱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결선투표제도 없는 한국에서 말이다. 하지만 유전자를 검사하면 마크롱보다는 최재형 DNA에 더 가깝지 않을까.
에이, 하지만 후보들이 속한 정당의 중력을 당신은 너무 모르는데? 물론 심상정이 기존 진보 교과서를 넘어 예측을 뒤흔드는 행보를 하면 당 내 일부 인사들이 볼멘소리를 낸다. 정책 내공이 단단한 심상정은 얼마 전 국민의 세금은 꿀단지가 아니라고 발언한 바 있다. 멋지다. 왜 진보는 입만 열면 확장 재정만 이야기해야 하나. 안철수는 왜 꼭 국민의힘과만 단일화해야 하나. 이제 보수주의자라서? 한때 재벌의 동물원에 분노하고 촛불 시위에도 심지어 문재인 후보 보다 더 먼저 나왔는데? 혹시 당 내 관계자 중에서는 국민의힘 정당에서 더 안락한 삶을 누릴 이들이 있어서? 김동연은 다행이다. 아직은 세력이 미약해서 말이다.
이런 엘리트 흑역사와 정당 내 현실을 잘 안다면서 나는 왜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를 늘어놓는가. 왜냐하면 정치란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만약 그 길이 좀 더 다원적 경쟁과 공존 구도를 만들 수 있다면 시도해야하는 ‘불가능의 기예’이기 때문이다. 나 같으면 우선 심상정 후보가 제안한 양당 체제 종식 공동선언부터 하겠다. 그리고 세 후보의 출마의 변을 모아 ‘기득권 해체와 시민의 삶에 기회를 주는 선진국’으로 통일하겠다. 기후정의, 단계적 주 4일제, 차별금지법 등에서 안철수와 김동연은 조금 더 미래지향적인 좌표로 이동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이 이슈들은 모두 서구 자유주의자들의 주요 화두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심상정은 안철수, 김동연의 4차산업혁명 관련 공약들과 접점을 더 만들었으면 한다. 심상정은 김성식, 채이배, 김관영 전 의원 등 탁월한 중도주의자들(공공정책전략연구소)이 만든 보석 같은 대선 아젠다 리포트를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이후 대한민국의 다원주의 미래에 공감하는 시민들이 함께하는 플랫폼을 만들어 흥미로운 경쟁과 협력의 장을 펼쳐나가길 권한다.
이들이 제3지대 존재감을 키우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큰 이재명과 윤석열 두 후보들에게도 그리 나쁜 구도만은 아니다. 이후 이들 중 하나, 혹은 그 외 누구라도 대통령이 되었을 때 힘과 정계개편의 균형자가 생겨 한국 정치 법칙인 집권정당 자기 파괴를 다소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심상정, 안철수, 김동연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희미하게 열리는 미래로의 틈새를 더 확장할 수 있을까. 그들이 ‘마법의 공식’(아케인)을 넷플릭스가 아니라 현실에서 찾을지 지켜보자.
중앙일보 [ 중앙시평 ] 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