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감각, 무지, 무능의 대연정'

과거 수갑을 차고 정치경찰과 정치검찰의 야만적 수사와 기소를 당할 때도 난 별로 슬프지 않았다. 10년형 구형을 받은 재판정에서 한 판사가 졸고 있는 걸 볼 때조차 난 피식 웃었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함께 험한 길을 걸어가는 친구와 시민, 그리고 진리가 함께 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슬픈 날이다. 나와 인연이 있는 민주당과 정의당의 정치인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열성 시민들에 의해 ‘검수완박’이 완성될 수도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검찰에서 경찰로의 힘의 이동과 허점투성이 ‘개혁안’으로 인해 과거의 정치검찰, 정치경찰, 그리고 정치판사들은 앞으로도 창의적으로 생존해갈 전망이다. 그리고 이제 진리란 탈 진실과 영구적 대선의 시대에 학자들의 지루한 논문에나 간혹 등장한다. 오늘은 무감각, 무지, 무능의 3무 대연정이 한국 정치의 물리학 법칙으로 완성되었음을 선언하는 날이다.

무감각. 오늘 전자투표기의 스크린을 터치하는 의원들은 검경수사권 조정 1년간 양산된 억울한 피해자들의 얼굴이 최소 향후 1년간은 꿈에 나오시길 기대한다. 나는 최근에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을 보며 한국 사회에 대한 희망을 잠시 품기도 했다. 숨 쉬는 권리는 토론 배틀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 보다 더 ‘자유주의 헌정주의 민주주의’ 가치를 생생히 표현하는 말이 어디 있을까? 다수의 숫자와 국회의장 중재로도 결코 박탈할 수 없는 개인의 존엄한 권리 보장을 우리는 자유주의라 부른다. 이게 러시아, 중국, 북한과 차원이 다른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저력이다. 하지만 전 세계 리버럴 정당들과 달리 한국의 민주당은 요즘 경찰의 수사권 독점화 추세 속에서 생기는 현장의 구체적 피해자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전 세계 좌파 정당들과 달리 한국의 정의당은 최종적으로 정치권력이 아니라 민중들에 의해 사법을 통제하는 좌파적 관점(진보 학계에서는 이를 ‘민중 헌정주의’라 한다)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포퓰리즘을 경계하는 전 세계 합리적 보수주의 정당들과 달리 한국의 국민의 힘은 자의적인 국민투표 회부를 전가의 보도처럼 꺼낸다. 윤석열 당선인은 자유민주주의 복원 주제의 취임사를 쓰려고 혼자 애쓰는 시간에 김예지 의원에게 자유민주주의론 과외를 받는 건 어떨까?

무지. 나는 민주당 일각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의 모범으로 미국을 이야기하는 가짜뉴스를 퍼뜨릴 때, 그 무지에 혀를 내둘렀다. 동시에 미국을 교과서처럼 떠받들어 온 국민의힘이 정작 미국이 그나마 잘하는 정교한 검찰제도에는 눈을 감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나는 미국 정치 모델의 결함에 대해 누구보다 강하게 비판해왔지만 검찰제도는 우리가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한다. 비문명과 싸운다는 핑계로 트럼프가 검찰을 장악하려 온갖 만행을 저질렀지만 그조차도 결국 실패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연방 검찰청장, 대부분 주에서 시민이 선출하는 주, 지방 검찰청장 간의 상호 경쟁과 견제, 검찰의 자의적 기소권을 견제하는 시민의 기소 대배심, 감찰위원회, 법무부 윤리 규약, 직무에 대한 소신 문화 등의 미국 모델을 더 강화하는데 왜 그들은 관심이 없을까? 무감각과 무지는 서로를 필요하고 서로를 돕기 때문이다.

무능. 자신들이 의도한 대로 정국이 굴러가지 않는다는 건 한국정치의 상식이다. 조국 사태와 부동산 실정을 떠올려보라. 본회의에 올라온 민주당 법안들을 보면 얼마든지 검찰주의자들이 우회할 길이 많다. 지면 상 그저 단 한 가지 예만 들어도 검찰이 경제와 부패 범죄를 어떻게 정의하는 가의 여부에 따라 범위가 자꾸 늘어난다. 내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 내정자라면 지금쯤 다양한 시나리오 상상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을 터이다. 물론 제 2의 권성동이 얼마든지 이번처럼 민주당과 정의당을 위기에서 구원해줄 준비가 되어 있기는 하다. 자유민주 가치의 등대가 없는 이들은 언제나 표류한다. 그리고 정의당에는 아직도 좌파 정당의 가치에 별로 관심이 없는 민주당 2중대주의자들이 남아 있다. 나는 나중에 인천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지 똑똑히 지켜볼 생각이다.

이게 정말 최선일까? 검찰주의자들조차 공공연히 볼멘소리를 내기 어려운 수준의 ‘자유주의 헌정주의’ 가치가 녹은 대안과 진정성을 가지고 다수 시민들과 함께 연대할 수는 없는 건가? ‘적폐’의 전방위 공세 앞에서 너무 우아한 이야기라고? 그 말을 고 김근태 의원 묘소 앞에서 한번 해보길 바란다. 저들이 그토록 잔혹하게 고문 수사하고 공안통치할 때도 그는 괴물들보다 더 높은 도덕적 권위와 적법한 자유주의 과정을 지키려고 몸부림쳤다. 왜냐하면 그는 진영보다 인간과 대한민국의 고결함을 더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그 결과로 시민들이 진영마저 지켜주셨다. 본회의에서 전자투표기 스크린 앞에 앉은 모든 개별 헌법 기관들은 자신들이 진짜 지키고 사랑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보길 부탁드린다. 그게 만약 억울한 약자와 민주공화국의 가치가 아니라면 왜 그 자리에 계속 앉아 계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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