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낀 세대’ 당 대표를 꿈꾸며

내가 민주당의 이재명 의원이라면 당 대표로 강훈식 의원이나 김해영 전 의원을 지원하겠다. 내가 정의당의 이정미 전 대표라면 당 대표로 조성주 전 미래정치센터 소장을 지원하겠다. 물론 불가능해 보인다. 이번 한국판 종이의 집 1편이 기대에 좀 못 미치는 이유는 다음 장면이 예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릴 넘치는 반전과 파격의 행보가 보고 싶다.

하지만 이들은 존재감이 너무 약하지 않은가? 그렇다. 그래서 X 세대는 낀 세대로도 불린다. 민주당의 강훈식, 김해영 등은 위로는 우상호 등 소위 586, 아래로는 박지현 등 Z 세대에 어정쩡하게 끼여 있다. 정의당의 조성주는 위로는 심상정 등 소위 586, 아래로는 장혜영 등 밀레니얼 스타 틈바구니에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낀 세대라는 건 오히려 오늘날 이재명, 이정미 두 대선후보와 당에는 역으로 강점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향후 5~10년은 두 거대한 시대 사이에 끼어있는 혼돈의 이행기라 그에 적합한 연결의 다리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단지 나이의 젊음이 아니라 가치와 태도, 그리고 아젠다에서 낀 세대로서의 새로운 내용을 만들어 내야 한다. 나는 그 키워드가 전환적(Transformative) 가치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두 시대 사이에 우리는 끼어 있는가?

첫째로, 87년 민주화 시대에서 자유주의 시대로의 이행 사이에 끼어 있다. 촛불 이후 집권한 문재인 행정부는 많은 성취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존엄과 분배 정의, 법적 지배 등 자유주의 공고화로의 시대 과제에는 한계가 많았다. 내로남불과 혐오, 자산 양극화가 심화되는 걸 적극 교정하지 못하는 자유주의란 위선일 뿐이다. 지금 그 역풍으로 인해 특수통 검찰로 채워진 ‘큰 국가’에 의한 정치의 사법화와 자유주의의 낡은 버전인 ‘작은 국가’가 기괴하게 결합된 시대를 살고 있다.

둘째로 상호의존의 세계화가 주는 그 편리함에 푹 젖어있던 탈 냉전기에서 이념과 공급망 사슬의 재정렬과 전쟁의 유령이 배회하는 신냉전 시대로의 이행 사이에 끼어 있다.

셋째로 지구행성 착취의 편리함에 푹 젖어 기후 위기를 알면서도 외면했던 시대에서 기후 장기 비상시대로의 이행 사이에 끼어 있다. 이 이행기 이후는 더 이상 기후 위기 ‘완화’가 아니라 잔인한 재난 시대에 ‘적응’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강제된다. 이 세 가지 이행은 기존 경제, 통상, 외교안보, 환경, 디지털, 우주, 재난, 교육, 방역, 문화, 국가조직 등 모든 영역에서 새 노선을 요구한다. 아니 그 영역을 나누는 발상 자체가 낡았다.

위 세 가지 전환의 디스토피아적 징후가 압축되어 나타나는 사건이 바로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만약 이 전쟁에서 푸틴이 승리하고 트럼프 스타일이 미국에서 재집권한다면 러시아는 자유주의 대 비자유주의의 신냉전과 기후 에너지 체제 대결에서 당분간 버틸 수 있다. 이 전쟁에서 가장 전리품을 많이 챙긴 자가 만약 시진핑이 된다면 중국은 자유주의 대 비자유주의 신냉전 대결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신재생 에너지와 위안화 패권을 구축해나갈 수 있다. 대한민국의 존망이 걸린 불길한 시나리오들이다.

새 당 대표는 세 가지 이행기의 과거와 미래 패러다임, 베이비붐과 Z세대, 당심과 민심 사이 세 가지 틈새에서 함께 힘을 모아 나아가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관리하면 24년 총선에서 패배를 최소화할 수 있다. 27년 대선 후에는 민주당, 정의당 및 제 3지대의 정치 전환을 위한 연합정부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32년 이후에는 밀레니얼 세대 출신의 대통령이 될 인재들도 지금 잘 진화해가고 있다.

그럼 민주당의 이재명과 홍영표, 정의당의 이정미와 양경규 등 리더급 인사들은 몇 년간 뭐하지? 위 세 가지 과제에 대한 각자의 새로운 답을 만들어 내는데 사활을 걸어야 한다. 글쎄, 검찰이 공부 과정을 자꾸 방해할텐데? 하지만 새로운 전환기 비전과 법적 지배 가치의 등대가 될 때에만 국민들은 그 불빛을 지키기 위해 애써 주신다.

민주당과 정의당이 선거에서 더 잘나가길 바라는 이들에게 요청 드리고 싶다. 두 정당이 낀 세대 주도로 새 리더십을 만들어 낸다면 단지 대선 승리 가능성만이 높아지는 게 아니다. 동시에 윤석열 행정부와 국민의힘이 합리적 보수와 통합적 리더십으로 모드 전환해야만 살아남는 상황을 강제할 수 있다. 지금 이대로 가면 저마다 ‘한지붕 세가족’의 민주당, 정의당, 국민의힘은 서로의 실패만 고대하며 연명하다가 이합집산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는 계파나 정파의 수장이 아니다. 이 고통스러운 혼돈의 전환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겸손하게 미래 틈새로의 다리가 되어 주는 자이다. 그간 과소평가된 낀 세대에게는 그 잠재력이 있다. 다만 단순한 세대 구분론은 더 나은 가치와 만나야 한다. 그간 사이에서 곤혹스럽게 살아온 낀 세대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중앙일보 [ 중앙시평 ] 6.28
이미지출처 | 민중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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