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이 필요한 민주당과 정의당

조국 옹호, 검찰 개혁, 가치 결핍 외교, 대선 패배. 이 4가지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아, 그건 민주당과 정의당이 지난 몇 년간 받은 비판들의 리스트 아닌가. 흔히 이 4가지 서로 다른 영역에 대해 각각 평론가, 법학교수, 국제정치학자, 선거전략가들이 논쟁해 왔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4가지 사례는 하나의 공통된 이유에서 기인한다. 바로 자유주의(더 넓게는 공화주의) 가치 결핍이다. 규칙과 과정에 대한 감수성, 견제와 균형, 법적 지배 등의 가치 말이다.

유럽식 사민주의라는 평등의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척 하는 조국 교수는, 1심 판결에 따르면, 입시의 공정한 규칙을 파괴하고 견제 기능인 감찰을 무력화했다. 검찰을 진정으로 개혁하는 척 했던 민주당과 정의당은 자의적 통치에 대한 견제와 균형으로서 시민의 검찰 통제 대신에 경찰을 비대화했다. 검찰 특수부 정권을 탄생시킨 데 대한 반성 한 마디 없이 장외투쟁이라니. 국제노선에서도 가치와 이익의 조화보다는 국익이라는 미명 하에 지나치게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과거 싱가포르 리콴유 총리의 몰가치 노선에 대해 자유주의 가치론으로 논박한 김대중이 그립다. 지난 대선 패배는 국내외적으로 가치가 실종된 야권에 대해 굳이 지지할 이유를 찾기 어려운 이들이 이탈한 귀결이었다.


이 4가지의 공통점을 보면서 한국 정치에 대한 나의 판단 착오를 깨달았다. 나는 원래 미국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모델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안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요즘 들어 딱 바이든만큼이라도 하는 민주당과 정의당을 보는 게 어느덧 이상적 목표가 되어버렸다.

바이든은 문제가 많은 아들인 헌터 바이든의 입시와 비윤리적 행위에 개입하지 않는다. 바이든은 적폐 청산을 위해 법무부를 도구로 삼지 않는다. 법무부가 자신을 수색하는데도 트럼프와 달리 적극 협조한다. 바이든은 때로는 이익을 거래하고 때로는 냉전적 과잉 반응을 보이면서도 크게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원칙을 동맹들과 만들어 간다. 바이든은 대선에서는 ‘미국의 혼’을 대표 슬로건으로 내걸어 승리했다. 이 가치 기반의 정치가 너무 고상하게 들려 전략가들이 바이든에게 구체적 이익을 내걸고 승부를 보자고 권유했지만 그는 단호히 거부했다. 바이든 진영은 이 가치 기반 캠페인으로 중도의 마음을 얻어 3번 연속 선거에서 승리했다. 2024년 대선에서 또 트럼프와 맞붙는다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윤석열 행정부의 국정운영과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의외로 해법은 간단하다. 자유의 철학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후삼국 시대도 아닌데 ‘윤심’ 관심법 논쟁하는 이들은 비판이나 장외 집회로 교정되지 않는다. 그저 바이든처럼 묵묵히 자유주의 가치를 추구하다가 계속 선거에서 이기면 된다.

한국 정치의 비극은 야권에 이 4가지 사례의 공통점인 자유주의(공화주의) 가치의 결핍에 대해 강한 문제의식을 지닌 정치인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김대중, 노무현, 노회찬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 일부 정의당 관계자는 아마 “우리는 미국 자유주의보다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한다”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웃기는 소리다. 국민의힘이 망가뜨리고 민주당이 외면한 자유주의를 더 철저히 이해하고 성숙시킬 능력도 없는데, 어떻게 그 한계를 극복한다는 건가. 바이든을 넘어서는 좌파의 희망인 미국 민주당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 하원의원은 한국의 진보들과 달리 쿠바 등의 인권 유린에 대해 강한 목소리를 내며 자유주의를 앞장서서 실천한다.


얼마 전 발을 접질려 우울증까지 생긴 나에게 잠시 행복한 시간이 있었다. 과거 민주화 운동 시절 나에게 스승 같았던 걸출한 좌파 이론가 백승욱 중앙대 교수와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가 작년에 출간한 『1991년 잊힌 퇴조의 출발점』은 그간 몇 년간 나온 사회과학 책 중 최고의 걸작이다. 나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깊은 사유를 통해 얻은 그의 결론은 90년대부터 이 자유주의 구축에 실패해 온 한국 정치의 역사에서 오늘날 국내외 위기가 비롯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제질서의 대혼돈과 한반도 전쟁 위기는 기존 진영들의 노선, 즉 “진보의 습관적 반미주의와 보수의 습관적 한미동맹”을 긴급 재점검해야 극복될 수 있다고 그는 절규하듯이 호소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주로 해야 할 자유주의 정착의 고민을 왜 그 이론적 한계에 관심이 많은 우리가 대신 해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함께 씁쓸하게 웃었다.

바이든 대통령을 비대위원장으로 모셔올 수 없다면 결국 한국 정치의 지름길은 없다. 그저 부단히 개인의 존엄과 과정의 아름다움, 견제와 균형의 소중함, 법적 지배에 대한 헌신 등을 철저히 실천하고자 하는 세력들을 키우고 등장시키는 길밖에 없다. 정당과 시민사회를 떠나 이들 자유주의자(공화주의자)의 대연정과 생산적 경쟁을 통해 현 정치질서(혹은 무질서)를 무너뜨려야 한다.

Previous
Previous

'천아용인'으로 반전 이룬 이준석

Next
Next

‘어둠의 세력’이 패배하는 2023년